2023년이 저문다. 새해를 희망찬 마음으로 맞이하자.
새로운 길을 내자. 내 기존의 세계를 더 넓히는 방향으로 가보자.
루쉰의 말처럼, 우리가 가면 길이 되니까.
젊었을 때, 난 특수부대의 팀장이었다. 그 시절에 이름모를 산을 타고 정해진 목적지까지 제때 가는 것이 주요 관건일 때가 많았다. 처음 가는 산에서 소로길이라도 발견하면 최고였다. 그러나 대부분 어두울 때 움직여야 하는 임무의 특성상 그 길을 발견하는 행운은 잘 오지 않았고, 그럴때면 어김없이 가야 할 방향만 보고 길을 뚫었다.
이것을 숱하게 했을 20년 정도 경력의 나이 든 고참들은 이런 말을 자주했다.
“길이라는 것 별거 아냐,
그냥 우리가 지나가면 그거 길 돼버려.”
우리 모두 동의했다. 처음에는 작은 길이라도 발견하려 했지만, 이도 저도 안돼면 뚫으면 됐다. 정글도(刀)로 앞을 막고있는 가지와 넝쿨을 쳐가면서 사람 하나 비집고 나갈 정도면 됐다. 그러면 나중에 뒤따라 오는 팀들은 통과하기가 수월했다. 어느 덧, 바닥에는 소로길이 하나 금방 생겼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그 고참들이 했던 말이, 중국의 존경받는 사회운동가이자 문인(文人) '루쉰' 이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 때 나이 지긋했던 고참들은, 자신들이 한 말이 루쉰의 말이라는 것을 알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의 고백이었다.
루쉰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려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으나, '영혼의 마취 없이는 살 수 없는' 1900년대 중국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확인하고,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 「고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된다.”
경로 의존성
동물들은 먹이를 찾거나 번식을 위해 이동을 하는데, 그 때 꼭 가던 길만 이용하는 습성이 있다. 사람들은 짐승들의 이런 습성을 알고 그 길위에 덪을 놓거나, 지나가길 기다려 사냥한다. 이를 '경로의존성' 이라고 한다.
이런 동물들의 경로의존성은, 사람과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기에 이제는 사회학적 용어로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사람의 소비성향을 보면, 한 번 특정 브랜드에 만족하면 다음에도 그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충성 고객이 되는 것이다.
나는 차를 여러 번 바꿨는데 처음 선택했던 KIA 차만 탄다. 다른 회사 것과 비교하면서 타 보고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저 처음에 타보고 괜찮으니 계속 타는 것이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 중에는 지금도 인터넷 뱅킹을 안하시는 분들이 많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신다. 돈을 다루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은 꼭 본인이 은행에 가서 대면으로 처리해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경로의존성에는 폐해가 있다. 일단 특정 경로에 의존하게 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벗어나지 못한다. '못한다' 라기 보다는 '안'한다. 익숙한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은 우리의 이런 습성을 인지구두쇠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러가지를 탐색해서 결정하는 수고를 하기 보다는, 비슷한 상황이라면 늘 하던 방식의 패턴대로 하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유한한 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만 주구장창 고집하면, 편할지언정 발전은 어렵다. 그런데, 이런 익숙한 상황을 깨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항상 차고 넘친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이런 현상유지(Status quo)의 고정된 틀을 깨기가 어렵다.
하지만 현상유지(Status quo) 라는 안락함 속에 살다보면, 우리와 우리 사회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의 진보에는 항상 선구자가 있어 길을 뚫었고, 그 좁디 좁은 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대로(大路)가 되어 오늘날의 시대가 된 것이다.
새해엔 작은 새 길을 내보자
인간은 메타인지가 가능한 존재다.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인식적인(self-aware) 의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매번 다니던 길을 성찰할 수 있다. 아내나 자식들과 대화할 때, 동료들과 만나 어떤 일을 함께 할 때, 여가시간을 혼자 보낼 때마다 늘 자기가 다니던 길이 있다.
이 길을 조금 다른 길로 내 볼 수 있다. 해가 바뀌는 이 시기는 이런 마음을 내 보기 좋은 때이다. 자기 자신과 우리 사회를 더 건전하게 만드는 방향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새해에 나는 이런 길을 내보기로 했다.
1. 머리가 아닌, 가슴의 소리를 과감히 믿고 가보기.
2. 인정의 욕구를 완전히 내려놓고 열심히 하기.
2023년까지 끌고 다닌 수 많은 습관들, 내가 늘 애용했던 길들을 뒤로하고 새 길을 내어야 겠다. 청룡의 기상으로 정글도(刀)를 힘차게 휘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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