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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뿌리 생각' 을 생각하다 ② 인간의 존엄성, 존재 자체로 귀한 존재

알깨남 2024. 1. 6. 21:08

민주주의를 생각하려면, 우리 인간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존엄하다' 는 말도, 깊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갈 방향이 보인다. 

 

「민주주의」 의 뿌리생각 시리즈 ① (☞ Link) 에서 '천부인권(天賦人權)' 을 다뤘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의 권리는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왕이나 사람들이 만든 인위적 기관보다 더 큰 권위로부터 받았으므로, 이를 사람이 어찌할 수 없으며, 국가는 사람들 개개인이 가진 이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생각의 뿌리였다.

 

이제, 이 '천부인권' 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조금 더 들어가본다. 먼저, '인간이 존엄하다' 는 뜻이 뭔지 더듬으려 한다. 이 논의를 할려면, '인격(人格)' 이나 '인권(人權)' 과 같은 유사한 말들도 살펴야한다. 그래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 깊은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인격(人格, personality), 페르조나

인격은, 한 인간이 자신을 드러낸 형식이다. 영어로 'personality' 이다. 이는 페르조나(persona)에서 기인했다. 페르조나란 연극할  때 쓰는 가면이다. 배우가 일시적으로 쓰는 것이므로, 배우 그 자체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격(personality)도, 그 사람 자체는 아니다. 인격이란 고매할 수도 있고, 흔히 말하듯 밑바닥(?)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격(人格)은 존엄한 것이 될 수 없다. '그 인격의 주인(主人)인 존재' 로서의 '인간' 이 존엄한 것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중요한 개념이 있다. 인격이 고매하든 밑바닥이든 상관없이, 그 인격의 주인은 가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그런 것이다. 

 

인권(人權, human right)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갖는 권리는 매우 넓어졌다. 직업선택권, 참정권, 사생활비밀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최근에는 국민이 국가에 대해 인간다운 생활보장을 요구할 권리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이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누렸던 것은 아니고, 많은 희생과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얻은 노력의 결실이다. 

 

인권을 외치는 사람

 

이 인권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인간의 존엄성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엄밀히 그 선후(先後)관계를 따지자면,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뿌리생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인권(人權)이라는 개념을, '인간은 존엄하므로, 그 존엄성을 유지하고 펼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권리' 라고 해보자. 그러면 이 인권의 구체적 내용은 사회적, 시대적,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이 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인권의 범위도, 10년이나 20년 후에는 더 확장될 수 있다. 물론 안타깝게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인간의 존엄성' 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존엄하다' 는 의미

'존엄(dignity)하다' 는 말은,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매우 명예롭고 가치있음" 을 나타낸다. 유엔이 1948년에 정한 인권선언문에 등장했다. 성별이나 인종, 종교 등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지닌 내재적 가치를 짧게 응축시켰다.

 

북한에서 최고로 가치있는 자(者)는 김정은이다. 그래서 '최고 존엄' 이라고 한다. 하지만 존엄이라는 말에 '최고(最高)' 를 붙인다는 것은 이미 존엄의 의미가 훼손된 것이다. 존엄한 존재끼리는 평등하기 때문이다.

 

'최고 존엄' 이란 표현은, '인격(personality)' 과 '인간' 을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인격은 높고 낮을 수 있으나, 그 인격의 주인으로서 인간은 높고 낮음이 없다. 민주주의는 이 원리를 받아들인다. 북한은 이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기에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것이며, '최고 존엄' 이라는 호칭도 가능한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인간이 존엄한 이유를 추론했다. 그중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은, 인간이 이성과 양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천부인권' 이라는 민주주의를 낳은 뿌리개념으로부터 일탈할 위험이 있다. 이런 접근은 다른 논쟁을 불러온다. 이를테면, '만약 AI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이성을 갖게되면, 그들도 존엄한가?" 라는 식이다. 전혀 가치 없는 논의는 아니지만, 그건 중심을 잃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그가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충분히 가치있고 존엄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근원(source)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원과 항상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천부인권의 개념 뒤에 놓여있는 생각이다. AI가 아무리 고등한 수준이 된다해도, 인간의 이런 지위가 될 수는 없다. 족보가 다르다는 말이다. 

 

인간의 존엄, dignity

 

내 자식이 귀한 이유는, 나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그렇다. 그가 명성을 떨치든 범죄를 저질렀든, 기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전히 귀한 것은 마찬가지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 고 했다. 물론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여러 표현 중의 하나일뿐이다. '신의 아들과 딸' 이란 말도 있다. 불교에서는 '모두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는 말로 표현했다, 도교나 힌두교에도 이런 의미의 표현이 있고, 우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그런 뜻이다. 

 

그래서, 사람이 자신의 근원(source)을 망각하고 그 근원과의 연결을 잃어버린 채 흉한 인격(personality)을 취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귀한 존재인 것이다. 외모가 아무리 비천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그는 귀한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낳은 생각의 뿌리에는 이런 생각이 놓여있다. 수 백만년을 지나 드디어 인류가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대견하다. 내가 그 인류의 일원임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