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끼리 하는 사랑에는 늘 기복이 있다.
연인관계든, 친구관계든, 심지어 부모 자식 관계도 마냥 좋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이를 좀더 고급진 사랑으로 끌어올릴 방법은 없을까?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연인들이었다. 둘은 10년 정도 사귀다 2014년에 결혼한다. 공개적으로 서로를 칭찬하며 사랑을 표현했고, 자녀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즐기며 가족적인 모습도 오픈했다.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인도주의적 활동도 함께 한다. 서로를 동반자로서 아낌없이 지원하고 협력하는 보기드문 커플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2년이 지난 2016년 이혼 소송에 들어갔고, 7년 여동안 자녀 양육권과 재산 분할 등 복잡한 문제로 다투다가 작년 8월에 최종 이혼했다.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게 시작했으나 끝은 씁쓸한 앙금만 남게 되었다. 아쉬운 스토리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라면 세상에 무수히 많다. 한 때 열렬히 사랑했다가 원수가 된 사연이 아니더라도, 풋풋한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무심하고 시큰둥한 관계가 되버린 사례들은 널려있다.
인간의 사랑은 늘 이렇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사랑 vs 신의 사랑
사람끼리 하는 사랑에는 왜 이런 변덕이 끼어들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인간의 사랑과 신의 사랑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살피면서 접근해 본다.
인간의 사랑, 「If ~, then ~」 방식
사람끼리 하는 사랑의 밑바탕에는 모두 어떤 조건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연인끼리는 "네가 계속 이런 예쁜 모습을 지니고 있다면 ~", "네가 계속 이런 능력을 발휘해 준다면~", "네 성격이 이러이러 하다면 ~", "네가 나에게 헌신한다면 ~" 등이다.
이런 성향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사랑의 관계를 맺어갈 때, 이런 조건적인 속성을 부여하는 현상을 얘기한 것이다. 부모 자식간에도 "네가 학교성적이 좋다면 ~", "네가 부모 말을 잘 들으면 ~" 등의 조건이 암암리에 붙을 수 있다. 이런 조건이 충족이 안되면 급우울해 진다.
이런 「If ~ then ~」 방식의 조건적인 사랑은, 상대가 그 조건을 충족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조건이 안맞으면 사랑이 성사되질 않는 구조가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시선이나 사람의 도리상 겉으로 뭔가를 해 줄 뿐, 따스한 애정이 실리지 않는다.
신의 사랑, 무조건적인(unconditional) 방식
반면 신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 다른 게시글 「민주주의의 뿌리생각 ② 인간의 존엄성, 존재자체로 귀한 존재」 에서 언급했듯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귀하게 된다. 그가 어떤 자격을 갖춰야 신의 사랑을 받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신의 사랑은 무조건적(unconditional)이다. 인간의 사랑과 신의 사랑의 차이점은 바로 조건이 충족되어야 사랑하는 것과, 그런 조건들에 관계없이 사랑하는 것의 차이다.
우주는 어떤 사람의 성질이 고약하다고 해서, 그에게 햇빛과 공기를 끊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장(場)을 펼쳐놓는다. 부자가 기도할 때나, 가난한 자가 기도할 때나 그 가치는 똑 같다. 또한 조건없는 사랑은 그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감사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추앙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사는 모습간의 여러 차이가 존재하므로 불평등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 인식과 판단의 시야가 협소한데서 기인한다. 이 이슈도 언젠가 다뤄볼 계획이다. 우리 인간과 삶을 이해하려면, 인식의 지평을 지금보다 훨씬 더 넓게 확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우주적인 맥락속에서, 보다 큰 그림속에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
인간의 사랑을 더 고급지게 !
조건이 맞아야 사랑을 주게 되는 인간적인 사랑에서, 신의 사랑을 닮은 순수하고 조건없는 사랑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적인 사랑을 하지, 어떻게 신의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가능한 방법이 있다.
신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신은 어디에나 계시다. 그래서 신의 사랑도 어디에나 있다. 그 어디에나 있는 신의 사랑을 내가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사랑과 주파수를 맞출수만 있으면 된다. 다행히도 우리 인간은 내면의 주파수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는 신의 사랑과 주파수를 맞추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직관(intuition)과 관련된 앞글(☞ link) 을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기초 단계
1. 우선 잡다한 상황과 일에 빨려나간 자신의 주의력을 거둬들여, 고요한 상태를 만든다.(여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숙달되면 금방 된다)
2. 이 고요한 상태에서 신의 사랑과 접촉을 요청한다. (믿는 신이 없으면 우주라고 해도 된다. 신의 사랑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반드시 응답한다. 특별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없어도 상관없다.)
3. 이제, 접촉된 신의 사랑을 원하는 대로 보내면 된다. (자기에게 보내도 되고, 보내고 싶은 사람을 향해 특별한 요청을 실어서 보내도 된다.)
※ 위 1번 단계에서, 자신은 고요한 상태를 만들었다고 하나, 여전히 어떤 욕망이 작동하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 완전히 순수해 질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고요해지기 전보다는 분명 더 순수해졌기 때문이다. 차츰 노력을 통해 순수의 정도를 올려가면 된다.
생활 응용 단계
위 기초단계가 익숙해지면, 누군가와 대화할 때나 다른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을 때도 신의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다. 그 상황에서 앞의 1. 2. 3 번을 수행하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물론 상대와 대화할 때도 가능하다. 신의 사랑이 흘러가는 흐름 위에 자기 말을 부드럽게 얹어놓는다는 느낌으로 하면 된다.
또한, 갈등이 있는 상황에도 유용하다. 그 갈등속에 휩쓸리지 말고, 그 속으로 신의 사랑이 들어가도록 조율해 주면 된다.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 신의 빛이 일하도록 해주면 충분하다. 내가 어떤 말을 할 때보다 훨씬 유능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방식을 활용하다 보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줄 수 있게 된다. 우리들이 맺는 관계에서의 갈등은 대부분, 자기만의 인식필터로 상대의 말과 태도를 덧씌움으로써 생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는 말은 강한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의 이런 인식의 습성을 일깨운다.
우리가 신경쓰고 있는 일들에서 일시적으로라도 우리의 의식을 거두어 들여서 고요하게 해야, 그 빈 공간으로 신의 사랑이 들어올 틈이 만들어 진다. 그러면 그 이전과는 달리 보인다. 비로소 상대가 온전히 보이기 시작한다. "I see you" 가 되는 것이다.
자주 해보고, 자기만의 또다른 방식을 발전시켜도 좋을 것 같다. 하다 보면, 꽤 효과적임을 느끼게 된다. 물론 많은 실험을 통해 자기만의 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번 이 방법을 익혀 놓으면, 일상에서 맺는 여러 관계를 더욱 좋은 관계로 만들어가는데 아주 쓸만하다. 내 경우에는 그러했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주주의의 뿌리생각을 생각하다 ③ '천부인권'의 더 깊은 의미 (1) | 2024.01.12 |
---|---|
손웅정과 베켄바우어, 그들이 진실을 대하는 태도 (0) | 2024.01.10 |
민주주의의 '뿌리 생각' 을 생각하다 ② 인간의 존엄성, 존재 자체로 귀한 존재 (0) | 2024.01.06 |
칼레파 타 칼라? 그래도 한 걸음씩 ! (2) | 2024.01.04 |
「민주주의」의 '뿌리 생각' 을 생각하다. ① 천부인권 (0) | 2024.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