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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모차가 유모차보다 많이 팔린다. 무너진 진화심리학의 대전제

알깨남 2023. 12. 27. 02:33

반려견 유모차, 속칭 '개모차' 가  유모차보다 많이 팔렸다. 
우리의 저출산 문제는 급부상한 후, 잡힐 기미가 없다.
불과 20여년만에, 수 만년 동안 우리 인간의 DNA에 각인된 종족보존의 본능이 한국에서는 힘을 잃고 있다.
진화심리학의 대전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드디어 자기 DNA의 지배로부터 능동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징표가 될 수 있을까? 

 

올 3분기 동안, 개모차 판매량 유모차 초월

우리 나라 저출산 문제의 경고등이 여러 데이터로 울려대고 있다. 한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고작 26만명에 불과하다. 빠르게 생각해서, 모든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가정 당 2명의 자녀를 낳아야 인구가 유지된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율 자체가 너무 낮아지고, 한 가정 당 태어나는 아이의 수도 한명 남짓이다.
 
대신, 이 빈자리를 반려동물이 차지했다. 현재 800만 마리의 반려견과 반려묘가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아가고, 그 수가 빠르게 증가 중이다. 
 

개모차와 유모차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반려동물용 유모차, 속칭 개모차의 판매량이 유모차를 앞질렀다는 보도가 최근에 잇따랐다. 지난해는 유모차가 개모차 판매량 보다 두배 가량 많았는데, 올해는 개모차에게 따라잡혀 버렸다. 3분기 까지만의 통계이지만, 57%와 43%로 역전된 것이다. 

 

무너진 '진화심리학' 의 대전제

진화 심리학은 참 흥미로운 학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굳어진 행동습관을 진화적 기원을 찾아 설명하는 것인데, 아주 설득력이 있다.
 

진화심리학의 첫 번째 Key word : 생존

진화심리학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한 축은  '생존' 이라는 측면이다. 예를 들어, 원시시대때부터 우리는 살아남아야 했기에, 생존에 유리한 행동방식을 습득해 나갔다. 길을 가다가 근처에서 갑자기 큰 소리를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달아나고 본다. 그렇게 해야 혹시라도 있을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유전자에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
이미지 출처 : https://biologyeye.com

 
그런데 밤에 길을 가다가 미세하게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이때는 자기도 모르게 뚝 멈추고 정지한다. 그리고 나서 생각한다. '이게 뭔소리지, 위협이야 아니야?' 이 상황에서는 섣불리 움직여서 자기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 보다는,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DNA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의 두 번째 Key word : 번식

다른 한 축은 '번식', 즉 자기 종족보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성 파트너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외모가 건강하고 번식력이 뛰어날 것 같은 상대에게 더 끌리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성은 또래 집단에서 자기가 더 많은 번식의 기회를 갖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따라서 강한 육체, 싸움판에서 이기는 능력을 키워가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 반면 여성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 살아남을 수 있게, 충분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남성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성은 남자의 능력을 우선시하도록 진화했다고 이 이론은 설명한다. 
 

진화심리학의 대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진화심리학은 우리 인간 행동의 기원을 잘 설명해 왔다. 그런데, 이상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후손을 가지려는 오래된 DNA적 추동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합계출산율 0.8. 그러니까 가임 여성이 1명의 자식도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합계출산율이 2.1이 되어야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0.8 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스스로 점진적인 종족의 소멸을 선택하고 있다는 말이다.
 
진화심리학의 강력한 축이었던 생존과 번식 중, 번식의 축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렇게 35년 정도 지나면 산술적으로는 인구수가 반토막나고, 그 반토막난 인구의 절반마저 이미 환갑이 지난 상태가 된다. 옛날 개그 콘서트의 유행어가 떠오른다.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무엇이 종족보존의 근원적 추동력을 약화시켰나?

 

정부는 저출산율을 극복하는 데 그간 수 백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올해 쓴 예산만 150조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출산 장려금을 늘리고, 육아휴직을 확대하며, 어린이집도 더 만들고 보육료도 지원한다. 그런데 이런 접근이 효과가 잘 안난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내 후손을 만들어야 겠다라는 이 원초적 욕구의 불꽃을  다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저출산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종합적 귀결일 것이다. 그래서 표피적인 문제들만 건든다고 해결되기 어렵다. 한 집단이 집단적 소멸을 택하는 쪽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그 무리가 사는 환경이 살만하지 않다는 말이다. 
 
지금 아이를 낳아야 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결정했다.

 
"자식이 생긴다는 것은, 부모와 자식 둘다 불행해질 위험이 크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내 후손은 안 태어나는 것만 못하다."
"이렇게 사는 것은 나로 족하다."
 

나와 같은 기성세대가, 여기에 큰 책임이 있다. 자기 자식이 잘 돼도록 그토록 열성적으로 가르쳤던 그 이면에는 탐욕과 보상심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오늘 우리 사회를 스스로 집단소멸을 택하는 쪽으로 굴러가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그토록 꿈꾸었고, 내 자식이라도 대신 이루어주길 바랬던 그 꿈과 욕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원래 실패가 예정되어 있던 실험이 아니었을까? 함께 행복하지 않는데, 나와 내 자식은 행복하기를 바라는 꿈과 욕망, 이 놈이 문제가 아닐까? 우리의 집단 지성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여러사람이 손을 한데 모아 화이팅
출처 : Pixabay, Henning Westerkamp 님의 이미지

 
하염없이 내려가는 저출산의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아들, 딸이 살았으면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 행복한 그런 사회입니까?"
"이에 대한 답을 아는데 얼마나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한가요?"
"이만하면 충분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