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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집안일, 그 역사적 편견을 깨뜨리며.

알깨남 2023. 12. 15. 17:13

어제 고양 대화도서관에서 정창권 고려대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주제가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이었다. 제목이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그래서 아내와 둘이 겨울빗속을 헤치고 참석했다.
 
범상치 않은 제목이기도 했지만, 요즘 내가 생각하는 주제들과 맥이 닿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고정된 성역할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 사회도 빨리 그 다음 버전의 남녀 관계 모델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정창권 교수 대화도서관 강연,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정창권 교수님의 고양 대화도서관 강연 모습

 

강의 내용이 흥미로웠고,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잘 깨주었다. 나는 한국의 전통사회가 가부장적 문화가 공고했다고 배웠고,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게 믿었다. 내가 보아온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만 보아도 딱 들어맞는 사실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편견을 깨준 역사적 사실들

 

우리의 역사 기록은 주로 왕조(王朝) 중심이다. 외국과의 관계, 왕들의 업적, 그리고 여기에 관여한 관료나 학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역사기록에는 우리 삶의 땀내나는 이야기와, 알콩달콩 티격태격대는 일상의 생활담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자료도 빈약했겠지만, 그런 것들은 웬지 역사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역사 시험을 칠 때 문항으로 만들기 좋은 주제들이 아니기도 했을 것이다.
 
정교수님은 이 빈틈을 잘 파고드셨다. 역사서에 기록된 굵직굵직한 이야기들이 아닌, 집안 가족끼리 오간 편지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 시대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본 것이다.
 
지금도 어떤 사람이,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는 지를 볼려면, 그의 SNS를 보면 되지 않는가? 교수님도 지금의 카톡이나 문자메세지에 해당하는 가족들간 오간 편지, 메모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으신 것이다.  
 


오희문의 쇄미록, 귀여운 부부의 모습

 

오희문은 조선 중기 때의 선비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매일 일기를 썼다. 그는 당시 생활상을 실감나게 기록했다. 
 

오희문의 쇄미록, 임진왜란 피난기록

 

1596년 10월 4일 일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아침에 아내가 나보고
가사(家事)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 동안 둘이 입씨름을 벌였다.
아! 한탄스럽다..."

 

아내는 집안일에 무심한 것 같은 남편한테 불만이고, 남편은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그걸 알아주지 않는 아내가 야속한 것이다. 이 내용을 듣고, 속으로 킥킥 웃었다. '이건 뭐야? 우리 집 상황의 조선시대 버전이 아닌가?' 오희문과 그의 아내의 살이도 지금과 별반 다름 없었구나. 조선의 남자들이라고 해서, 집안에서 떵떵거리고 산게 아니었음을 알았다. 

 
 

집안일도 잘하고 학문도 잘했던 퇴계 이황

퇴계 이황은 조선의 대성리학자시다. 첫 부인이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일찍 떠나, 두번째 부인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장애인이었다. 학문에만 전념하고 제자들과 토론에만 열중하는 이황 선생의 모습을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았다. 집안일을 온전히 돌볼 수 없는 아내의 빈자리를 그가 다 메웠다.가 남긴 3천여통의 편지 대부분이 집안일 처리와 관련된 아내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우리 세대의 남자들은 은연 중 바깥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있는데, 대학자셨던 이황 선생은 집안일도 잘 돌보셨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몸이 불편한 아내를 존중하고 편견없이 대했다. 
 
한번은, 그의 제자 중 한명이 부부간 관계가 원만치 않자,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나는 두 번 장가를 들었는데
하나같이 아주 불행한 경우를 만났지.
이러한 처지에서도
나는 감히 박절하지 않고 
애써 아내를 대해준 것이 수십 년이었네. 
 
그동안 마음이 몹시 괴로워 
견디기 어려운 적도 있었네. 
그래도 어찌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서 
부부간의 큰인륜을 무시하고 
홀어머니께 격정을 끼칠 수 있었겠는가."

 

그의 편지를 받은 제자는 스승이 삶으로 실천하면서 보여 준 조언을 깊이 받아들였고, 그 제자의 아내는 이황에게 크게 감사했다는 뒷얘기도 있다고 한다. 
 

고추장도 담구었던 연암 박지원

연암 박지원 하면, 조선시대의 위대한 실학자이자, 열하일기나 허생전으로도 유명한 문장가이다. 벼슬도 꽤 높았다. 이런 박지원과 집안일을 연관시키는 것은 아주 짝이 맞지 않을 것 같은데,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정말 의외다. 

 

"전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아침저녁 반찬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나쁜지 말이 없니? 
무심하다, 무심해. 
나는 그게 포첩(말린 고기)이나 
장조림 같은 반찬보다 나은 듯 하더라. 
 
고추장 또한 내가 손수 담근 것인데,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가지를 
인편에 보내든지 말든지 하겠다."

 

자식들에게 반찬이랑 고추장을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잘 나와있다. 그리고 그런 사랑쯤은 당연한 듯, 무덤덤한 반응으로 부모 마음을 서운케 하는 자식들의 모습도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마지막 부분은 요리하는 사람이, 먹는 사람으로부터 '정말 맛있네.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에요' 라는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귀여움도 묻어있다.
 

 

일제시대가 주입한 이상한 편견

우리 선조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집안일에 관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고정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교수님은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생겨난 관념이라고 말씀하신다.
 
대동아 전쟁때, 힘을 쓸만한 남자들은 전부 전쟁터와 일터로 끌고 가버리니, 집안일은 오롯이 여성몫이 되었다. 그러니 여성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이를 이론적으로 무마시키려는 시도가 이른바 '현모양처론' 이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집안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는 그럴듯한 허울을 유포한 것이다.
 
그 원인이 이것 때문만일지는 단정지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강연을 듣고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깨진 것은 분명하다. 이 땅에 살았던 남자들이 집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문화를 집단적으로 향유하는, 그런 낮은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여성들과 조화로운 일상의 모델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강력한 남성 우월주의, 고정된 성역할 같은 관념이라는 것이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모래성 같은 것이다. 아마 조만간, 남성과 여성의 특성들이 잘 어우러진 관계모델을 우리가 머지않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정 교수님 같은 분들도 계시고, 커뮤니티 그룹 들 중에는 남성이면서도 페미니즘을 확장하는 데 앞장서는 분들도 계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책으로 펴내서 성(性) 대결이 아닌 조화로운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는 분들도 많으시다.
 
과거의 유물에 집착하지 말고, 모두가 행복한 다음 모델로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