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

21 번째 이사를 하며, 이제 알았다.

알깨남 2023. 12. 4. 09:56

사흘 동안 블로그를 쉬었다. 이사하느라 몸과 정신이 과부하되어 자판을 두드릴 힘까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난 35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스무 번의 크고 작은 이사를 해야했다. 

 

이사짐 나르는 모습
출처 :  Karolina Grabowska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506270/

 

나의 이사 스토리

결혼 후 이사할 때, 나는 직장 출근을 이유로 이사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온전하게 올(all) 함께한 적이 없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사소하지 않은 집안의 일들은 아내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살림살이를 옮기는데 능숙해졌다. 장농과 책꽂이, 냉장고, 쇼파 등을 새 집에서 어떻게 배치하고, 은행과 보험회사 등에 주소지 이전을 언제부터 시작해서 마무리해야 하는지, 정수기와 에어콘 기사분께는 언제 미리 알려두어야 하는지 감이 빨랐다. 

 

나는 이제 퇴직한 몸인지라, 핑게의 치트키였던 직장의 명분이 사라져 온전하게 내 몫을 해야했다. 안하던 내 몫을 하려니, 이게 간섭처럼 되기도 했다. 이리저리 의견도 엇갈린다. 

 

“식탁은  10년 넘게 썼고 무거우니 이번엔 폐기하자.”

“이만하면 아직도 쓸만하니 더 쓰자.”

“결혼 때 들여온 장롱은 모두 버리자.”

“그러지 말자”

“TV 장식장이랑 서랍장은 내부 바닥이 주저 앉았으니 버리고 가자”

“그건 좀 보수해서 쓰면된다.”

“꼭 필요한 물건만 사지, 무슨 물건들을 이리도 많이 사 모았느냐?" 등등. 

 

거기다가, 이사후 거실과 주방의 집기류 배치 등에서도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짐을 다 옮겨서 새로운 방과 베란다에 수납하고, 창문에 시트지 바르고 하느라 온 몸이 쑤신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세월에 장사 없음을 실감한다. 아내는 나한테 집안일이 서툴다고 구박한다. 일머리가 없다느니, 자기가 이제 하나 하나 가르쳐야 한다느니 농담반 진담반 약을 올린다. 

 

처음엔 살짝 기분이 나쁠라고 했는데, 일을 하다 보면 아내 말이 틀린 데가 없다. 나는 주로 힘쓰는 역할을 한다. 가구들을 재배치하고, 플라스틱과 철제류가 결합된 분리수거 대상물을 해체하고, 여러 수납공간에 액자, 선풍기, 매실 담근 용기 등을 넣으면서, 간간히 아내가 요구하는 심부름을 한다.

 

지하실과 분리수거장 그리고 이방 저방과 베란다 등 비교적 작은 범위내에서 움직였는데도, 휴대폰 토스(toss) 만보기가 9천보를 넘었다. 이 거리면 집에서 나와 1시간 가까이 산책을 할 거리인데, 그 거리를 그 좁은 동선을 물건 들고 왔다 갔다 했던 것이다.  다리를 쭈그리고 앉았다 폈다를 많이 했더니 허벅지 근육도 아팠다. 물과 세제를 많이 만졌더니 손도 얼얼하다. 손톱끝은 멍멍하다. 이사때 맟춰 도착한 이케아 가구들를 조립하느라 드라이버로 나사 조이기를  숱하게 했다. 이케아 기사분께 맡길 걸, 조립비용 절약한다고 괜히 나섰나 후회가 밀려온다.

 

버릴 것 버리고 온다고 했는데도 무슨 버릴 것이 또 나오는지, 50리터, 75리터 종량제 봉투를 끌어안고 분리수거장까지 네다섯번 왕복했더니 팔뚝 근육도 욱신 거리고, 손 아귀에 야무지게 힘이 잘 전달이 안된다.  

 

펜치로 철사를 자르려 하는데, 펜치를 힘있게 쥐지를 못하겠다. 이제 아귀 힘도 바닥난 모양이다. 뭔가를 들때도 꽉쥐기가 힘들다. 그러면서 문득 어떤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팔과 손가락 힘이 좋은 나  vs  그렇지 못한 아내

나는 팔 힘이 좋았다. 손아귀 힘도 좋았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체구는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팔씨름을 잘 하는 편이었다. 팔씨름 할 때, 상대 손을 탁 잡아보면 대충 감이온다. 상대 힘이 얼마 정도 될 것인 것 말이다. 손바닥과 손가락의 감지능력도 괜찮아서, 사람몸의 경락이나 급소 부위를 잘 찾는 편이다. 그래서, 가족들 몸이 불편할 때 안마를 잘 해주는 편이었다. 허리, 목, 두피 지압, 발과 정강이 부분들을 짱짱한 내 손가락 기운으로 치유해주는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씩 내 허리가 좋지 않아, 아내한데 어디 어디 부분을 지압해 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었다. 아내는 그 부위를 눌러준다. 그런데 충분한 압력이 가해지지도 않고, 기껏 두 번정도 하고는 더 이상 하지 못했다. 하나도 시원하지도 않고, 누른 것 같지도 않았다. 손에 힘을 저렇게 못쓸까 하고 원망스러웠다.

 

아내는 손에 힘을 못주겠다고 한다. 내가 안마를 부탁할 때마다 반복된 일이었다. 아내랑 나랑은 체격이 비슷해서 팔을 제외한 다른 부위 힘은 나랑 거의 비슷한데 유독 손아귀힘과 손가락 힘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신통치 않는 손가락 지압에 볼멘소리를 해주곤 했다. 

 

아주 늦게서야 알게된 이유

그런데 이번에 알았다.

아내가 왜 손아귀와 손가락에 충분한 힘을 줄 수 없는지를. 이불빨래 돌리고, 걸레로 닦고 짜고, 무우 썰고 마늘 까고 시금치 다듬고, 수세미로 후라이펜과 그릇을 닦는 집안 일 모든 것이 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내의 손 근육은 항상 과로상태였던 것이다.

 

지난 여름에는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싱크대로 옮기다가 손에 힘이 풀려 수박을 놓쳐버린 적도 있었다. 아내 손을 떠난 수박은 자연의 법칙을 따라, 여러 조각으로 먹기 좋게 갈라졌다. 

 

조각난 수박
출처 :  Unsplash 의 Rachel Kelli

 

 

“귀찮다고 고무장갑을 안끼고 일했더니 손이 부었네’, ‘칼질을 쉬지 않고 오래 했더니 손목에 무리가 왔네’  이런 말들을 아내는 지나가듯 혼잣말로 했다. 급기야 어제는 핸드폰이 자기 지문을 인식하지 못한댄다. 지문이 닳았기 때문이리라. 

 

이런 일들이 다 새롭게 인식이 되고 하나의 줄거리로 연결되었다. 내 허리 지압을 그렇게 맥없이 했던 것은, 잡다한 집안일을 도맡아 해 왔기 때문이었다. 같이 생활하니 관심을 더 가졌더라면 금방 알 일을, 이제 내가 집안일로 손아귀에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하고서야 깨우치게 된 것이다. 집안 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아내들이 시지프스도 아니고 이런 가사노동의 늪속에 살도록 했다는 말인가. 30년 다되서, 참 빨리도 알았다.  


 

자본주의를 떠 받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은 모두 급여를 받는다. 그러나 그 노동력을 또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무급 가사노동이다. 공기와 같은 것이다. 이 일이 여성에게만 당연한 듯 책임지워져서는 안된다는 분명한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된다. 거창한 페미니즘 논제를 들먹일 필요가 없이, 해 보니 알겠다. 

 

이번 스물 한 번째 이사는, 집안 일에 대해 가졌던 나의 막연하고 낡은 생각도 이사하게 해 주었다.  새로 이사 온 곳에서, 아내와 나는 더 행복한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