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한 10년 됐다. 대화 시간을 늘리고, 여가를 더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었다. 아이들도 동의해 주어서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공공장소에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TV를 오래 시청하지 않는다.
엊그제, 한 달전 피부암 시술을 받으신 아버지 병원 진료를 위해 KTX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종합병원 두군데를 돌면서 CT 촬영과 혈액검사를 했다. 진료 대기장소마다 대형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사를 만나기 전(前), 그리 맘이 편치 않는 시간동안 TV 화면에 시선을 두고, 보는 듯 마는 듯 보게 된다.
병원에서 가장 무난하게 틀어놓을 수 있는 채널이 뉴스 방송이다. 드라마나 음악, 스포츠 방송은 사람들의 선호가 달라 채널 다툼이 일어날 수 있으니, 뉴스가 가장 무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조금은 초조한 시간 동안, 진료 순서 모니터와 TV 화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요즘 제일 잘 먹히는 정치이슈를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보고 있자니, 웬지 숨이 막혔다.
패널들이 쏟아내는 정파성 발언과 날선 비판의 언어들, 시청자들에게 다른 정당이 얼마나 부도덕한지를 열심히 우겨대는 모습들, 그리고 갈등을 부추길 이슈들을 골라 대결의 장으로 만들려는 앵커의 모습들이 대형화면과 주먹돌 크기의 자막을 통해 모니터 밖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우리 언론의 이런 경향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를 망막과 고막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기분이 썩 밝지 않았다.
비오는 날, 차량들이 흙탕물을 튀기며 지나갈 때, 피할 공간이 없어 당분간 계속 튀기는 물을 맞아야 하는 기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음험한(?) 힘이 우리 사회를 점점 대결로 치닫게 하고, 많은 국민들은 은연중 거기에 빨려들고 있는 장면을 또 확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같은 목적 다른 방식, 말콤 X와 루터 킹
아프리카 흑인들은 15세기부터 다른 대륙으로 팔려갔다. 그들이 유럽 상인들에 의해서 해상수송 될 때, 몇날 며칠을 생선처럼 선적되어 운반되었다.
백인들에게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을 닮은 것, 요즘 말로 하면 안드로이드(Android)였다. 지금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 안에서 일하는 얘지만, 그때 흑인이 실제 안드로이드였다. 그 안드로이드에게 인권이라는 말은 애초에 갖다 붙일 수가 없었다.
20세기 중반, 미국은 여전히 흑인 차별이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흑인들의 의식이 성장해감에 따라, 흑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들의 아픈 흑역사를 바로잡으려는 흑인인권 운동은 '말콤 X' 와 '마틴 루터 킹' 이라는 동시대의 두 인물이 이끌었다. 그런데 그들의 방식은 사뭇 달랐다.
말콤 X...
그는 1925년, 미국 북부 미시건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 네 명은 광신적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으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말콤의 형제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져야만 했다.
말콤의 악몽은 성장기 내내 이어졌다. 학업성적이 우수했지만 ‘피부색 장벽’을 넘지 못했고, 술과 마약,도둑질로 빈민가와 할렘거리, 감옥을 전전하며 암울한 시기를 보낸다. 말콤이 만날 수 있었던 좋은 백인은 없었다. 그에게 백인은 ‘금발의 파란 눈을 한 악마’일 뿐이었다.
감옥 출소후, 급진적인 흑인 민족주의 이슬람 단체(Nation of Islam)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흑인들이 당시의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흑인을 백인과 분리하여 따로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인은 결코 흑인을 평등하게 대해주지 않으며 그럴 생각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주류인 백인 사회에 용기있게 부딪혔다. 방식은 직접적이면서 강렬했다. 흑인들에게 일어나 싸우라고 외쳤다. 그의 방식은 제 3자의 눈으로 볼 땐 폭력적이고 과격하다고 느껴졌다. 그런 말콤이 대중에게 어필했던 데에는, 뛰어난 연설로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솜씨도 한 몫 했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의 어두운 바닥을 보여주며 독설로 통렬히 비판하고, 귀에 팍팍 꽂히는 직설적 표현과 풍자, 날것의 쌍욕으로 세인의 이목을 휘어잡았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
"백인이 흑인에게
'나를 증오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강간범이 강간당한 사람에게,
또는 늑대가 양에게 '나를 증오하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평온하라, 예의바르라,
법을 준수하라, 모든 사람을 존경하라.
그러나, 누군가 너에게 손을 대거든
그를 무덤으로 보내라."
또한 그는 흑인운동가들 중에서 백인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자들에게도 날선 비판을 했다. 그들을 가리켜 ‘흑인 몸뚱이에 백인 대가리를 달아놓은 친구들’이라고 쏘아붙였다. 이 때문에 말콤을 비판하는 자들은, 그를 ‘증오의 메시아’, ’증오에 찬 인종차별 주의자’ 로 규정했다.
나중에, 그는 몸담았던 이슬람 단체에 실망하고,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난다. 거기서 그는 아시아계 황인종, 유럽의 백인들이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 주는 경험을 한다. 일평생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환대와, 인종을 초월한 인류애를 마침내 경험하게 된것이다. 그제서야 말콤 X는 세상을 둘로 나누어 상대를 적대시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로소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예전과는 달리 인류애에 기반한 흑인운동으로 뱡향을 바꿨다. 그래서일까,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이 전에 몸담았던 이슬람 조직의 흑인들로부터 사살되고 만다.
마틴 루터 킹...
그는 1929년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백인 중심 사회에서도 꽤 성공한 ‘흑인중산층’에 속했기에, 루터 킹도 별 어려움 없이 성장한다. 대학에서는 진보적 백인 대학생들과 자유롭게 지식과 지혜를 탐구했다. 졸업후에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인도의 무저항주의 독립운동가 간디의 철학에 심취했다.
킹은 흑인운동을 하면서 감금 등 수많은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비폭력 무저항 노선을 택한다. 그는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고유의 권리를 명시한 미국 독립선언문의 내용을 강조하며, 백인의 양심에 호소하면서 인종차별 없는 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
킹의 1963년 워싱턴 연설 'I Have a Dream' 을 들어보면, 인간 내면의 인류애를 건드려 사람을 뭉클하게 한다. 이 인류애를 전하는 감동의 힘이 미국 전역을 적셨고, 실질적인 제도변화를 일구어 내는데도 큰 힘을 발휘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불의와 억압이 이글거리는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그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루터 킹은 ‘미국의 간디’, ‘흑인의 모세’ 등의 찬사를 들으며, 미국 사회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도 나중에 북부 흑인의 참담한 삶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면서부터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해서는 흑인의 빈곤 문제에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후 그는 과격한 흑인 단체를 지원하는 등 보다 혁명 전사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결국 그는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었다.
나중엔 서로 비슷해졌다.
루터 킹은 기독교적 사랑을 바탕으로 ‘흑백 통합’을 추구했지만, 말콤은 백인에 대한 증오와 흑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흑백 분리’를 강조했다.
두 사람이 다른 길을 택하게 된 이유는 그들의 성장 배경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불우했고 백인들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말콤이 그런 대결적 인식을 가졌던 것에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인생의 말년에 자신의 운동 방식을 수정했다는 점이다. 말콤은 흑백통합론자들을 혹독하게 비판했으나, 메카에서 인류애를 경험하고나서 흑인과 백인의 구별에 기반한 흑인운동 노선에서 벗어난다. 피부색을 초월하여 자신을 대해 준 백인들에게 감동을 받고, 증오로 가득찼던 마음의 문을 열어, 백인은 흑인이 손 잡아야 할 형제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루터 킹 역시, 처음엔 사랑에 기반한 의식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현실의 장벽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과감한 혁파가 필요함을 인정하며, 젊었을 때의 말콤 X를 닮아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한 국가는 수 천만명에서 수 억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하는 일도 다르고, 의식 수준도 다르고, 지식 수준도 다르다. 그래서 그 사회가 가진 아젠다에 모두가 한 방식으로 동의하면서 나갈 수가 없다. 실제로 어느 한 방식이 모두에게 타당한 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의 루터 킹과 말콤 X가 추구했던 운동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가 없다. 그들이 나중에 자신만의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던 사실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사실 그 두 방식은 상호보완적인 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 이라는 것이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한 집단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상적 경향성 같은 것이다.
14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는, 신(神)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수 많은 예술과 과학이 꽃피울 수 있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시대에는, 인간의 가치를 더욱 보편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자유, 평등, 박애' 라는 사상이 세상을 이끌었었다.
지금 한국은 세대간, 계층간, 이념간 갈등이 구조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척추와 뇌에 발생한 병변이, 굳이 정밀검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 손으로 만져도 휜 것이 느껴지고 머리에 혹도 튀어나온 정도가 된 것이다. 이런 갈등을 우리 스스로가 해소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쇠락할 것이다. 사회의 역동적 에너지가 발전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내부 싸움에 탕진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유능해보이는 정치인들과 인플루언서들 대부분은, 젊은 시절의 말콤 X 형이다. 섹시한 말로 상대의 아픈부위를 콕 찌르는 데 능숙하고, 그러면 지지층들은 환호한다. 그러면 그 환호에 취해 더 열심히 자극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이런 현상은 상대를 자극하면서 더욱 하드코어가 되어간다. 국가적으로 보면, 참으로 멍청한 짓을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시대정신은 루터 킹이 그의 연설 "I HAVE A DREAM" 에서 보여준 '차이를 넘어선 연합'이며, 말콤 X가 말년에 보여준 '인류애에 기반한 유대감의 회복' 이면 좋겠다.
'지금 상황은 너무 엄중해서, 그런 한가할 소리 할 때가 아니다'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한번 믿어보자. 우리 가슴에 공통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신뢰하자. 그 불꽃은 약할 지언정 꺼질 수는 없는 것이기에, 옆에서 누군가가 타오르면 그 열기에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 지금 필요한 치유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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