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小人) '움파룸파'
설 연휴에 영화 '웡카'를 관람했다. 늦둥이 아들이랑 같이 영화를 보면, 늘 녀석 취향에 맞추게 된다. 그럴 때마다 영화 런닝타임의 2/3는 졸기 일쑤다. '스즈메의 문단속', '위시' ... 모두 그랬다. 지난번에는 무려 영화 시작전 광고를 보다가 잠이들었고, 깨보니 절반이나 지나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머지 시간도 리클라인 좌석의 푹신함에 몸을 맡겨버렸다.
이번 웡카는 끝까지 완람했다. 메시지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볼거리 들을거리를 잘 배치해서 영화적 즐거움도 있었고 의미도 잘 전해왔다.
이 영화에 작은 인간 '움파룸파'가 나온다.
'움파룸파'는 자신과 같은 소인(小人)들이 사는 섬에서 카카오 열매를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한 댓가로 쫒겨난다. 섬으로 돌아올려면 카카오 열매의 1000배에 해당하는 초콜렛으로 갚아야 한다. 그래서 주인공 웡카가 밤새 만들어 놓은 초콜릿을 몰래 훔쳐간다.
이런 소인(小人) 캐릭터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에도 등장한다. '릴리퍼트' 라는 소인국에 걸리버가 방문해서 여러 에피소드를 겪는다. 걸리버 여행기 덕분에 이런 작은 인간들을 릴리퍼트인이라고 부른다.
이 릴리퍼트인은 실제로 존재한다. 키는 40에서 90센티미터, 몸무게는 5에서 15킬로그램 사이다. 그들은 19세기 말에 헝가리의 어느 숲 야생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그 후, 그들은 사람들의 등쌀에 못이겨 뿔뿔이 흘어졌고, 지금도 수 백명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다.
영화 '웡카'에 나오는 움파룸파도 이 릴리퍼트인을 소재로 한 것이다. 릴리퍼트인 같은, 우리가 정상(?) 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기준을 벗어난 실례(實例)를 볼때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나의 세상관, 우주관, 역사관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런데 그 관찰된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팩트다. 나의 '관(觀)'을 어떻게든 조정하라는 압박을 느낀다.
'비정상(非定常)' 에 대한 두려움
릴리퍼트인들은 아니었지만, 나도 흔히 난장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몇 번 본적이 있다. 그때마다, 뭐라고 딱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손쓸 틈을 주지않고 일어났다.
"나랑 다른데... 뭔가 기이(?)해.
근데, 썩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아..."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그냥 봉인해제 되버렸다. 당혹스러웠다. 내가 그들에게서 그런 부정적 감정을 가져야 할 하등의 기억이 없는데,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혹여 내 얼굴에서 그런 낌새가 읽히지 않도록, 얼른 그 생각들을 되집어넣곤 했다.
진화심리학적인 해석을 빌리면, 우리는 자신이 정상(定常)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에 두려움을 갖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자신의 생존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라야 정상인 것으로 용인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이상(異常)한 것으로 규정하여 회피하거나 배척하도록 유전자에 새겨졌다. 그래야 자신과 자신의 집단이 살아남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완화되었지만, 어느 나라나 자기 사회에 이민족(異民族)이 유입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렸다. 역사적 경험으로, 이민족들은 병원균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이민족 자신들에게는 면역력이 생겨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들이 유입된 사회에는 원인모를 질병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으로 알았다. 그래서 자기 생존에 유리하도록, 일단은 이민족을 배척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미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잉카나 마야 문명은 급속히 붕괴되었는데, 잉카와 마야인들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은 스페인 군대의 총칼 뿐만 아니라, 천연두나 홍역 같은 질병도 큰 원인이었다. 유럽인들에게는 이미 면역이 생긴 것들이었지만, 잉카 마야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잉카 제국의 경우, 16세기 초 약 1천만 명이었던 인구가 16세기 말에는 2백만 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심각했다.
이런 경험들이 인류의 의식속에 공통적으로 전해졌고, 아마 그런 경향성이 내게도 새겨졌을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은 낡은 접근
세상 일에는 그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보게 된다. 알수없는 불안이나 행동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개 어린시절 겪었던 상흔에 기인한 것이고, 그래서 치유를 위해서는 원인이 된 사건을 스스로 알게하면서 시작한다.
인류가 수 만년의 진화과정을 겪으면서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물려진 많은 심리들이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 자손의 증식에 유리한 방식을 DNA에 새겨 놓은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 안에 새겨진 그런 심리들이 여전히 유용한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당시에 유용했던 행동과 사고(思考)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다니게 된다. 우리와 생각과 행동양식이 다르고 외모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유없는 혐오나 배척은, 현재 인류에겐 유용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극복해야 할 것들이다.
성(Gender)정체성과 관련된 새로운 용어들도 많이 등장했다. 남과 여 그리고 트랜스젠더만으로는 다양한 성정체성을 표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MTF(Male to Female), FTM(Female to Male), 트라이젠더, 젠더플루이드, 바이젠더 등이 그것이다. 이제 젠더의 구분도 남자와 여자이외에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들을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또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시야가 여전히 얼마나 협소한지를 알려주는 다양한 실례들이 존재한다. 밤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는 실제로는 두 별로 구성된 쌍성이고, 그 중 한 별은 지구와 크기는 비슷하나 질량은 태양과 맞먹을 정도로 무겁다.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20세기에야 겨우 발견했지만, 아프리카 소수 부족인 도곤(Doggon)족은 이미 그들의 오랜 전통속에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지금도 시리우스 별에 대한 특별한 의식을 매년 행하고 있다.
도곤족은 먼 과거에 시리우스 별에서 온 '놈모' 라는 존재가 각종 천문학적 지식과 농경 지식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고 주장한다. 또 플라톤이 언급했던 수 만년 전의 아틀란티스 문명도, 실제로 대서양 해저에서 그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지구의 역사도 우리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훨씬 장구(長久)한 것일 수 있고, 그 장구한 역사동안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의 친구들과 어떤 식으로든 교류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주 먼 옛날에는 인간의 외적인 모습도 지금과 사뭇 달랐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피부색과 눈동자 색깔과 머리칼이 지금 이렇게 확연히 다른 것은, 우리가 아직은 모르는, 우리 인간의 심원한 어떤 기원(起源) 때문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이런 사실 앞에 더욱 겸손하고, 사실을 대할 때 자기 신념을 앞세워 판단하려들지 말고, 우선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가장 현명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은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소크라테스의 말이 더욱 와닿는다. 물론 우리는 뭔가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아는 지식의 양(量)은, 전체 진실의 티끌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함께 알면, 우리와 다른 뭔가는 또다른 진실의 한 측면임을 알게하는 지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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