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호 작가가 쓴
「소설의 쓸모」 라는 에세이집에 이런 글이 있다.
"소설읽기는,
우리가 가보지 않는 길을
미리 안전하게 걸어볼 수 있게 해주는
지적인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다"
무척 공감이 갔다.
세익스피어가 여러 인물들을 창조하고
다양한 삶을 그려낸 것도,
사람들이 자기 삶이 아닌 타인들의 여러 삶을 체험하게 해 줄려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설이라는 형식이
뛰어난 작가의 역량을 통해 잘 빚어질 때,
허구이지만 오히려 진실만큼 힘을 갖는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 넣어주는 여러 지적인 음식들이 너무 딱딱한 것만 들어왔다 싶을 때면,
소설을 읽으며 여러 등장인물들의 삶을 경험하고 감정이입 해본다.
그러면 우리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혜가 한 움큼 더 들어온 것 같아서 좋다.
최근에, 청소년 문학에 속하는 소설 「유원」 을 읽었다.
작가가 처음 단 제목은 '날개가 피어나는 날' 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유원'은 주인공 이름이다.
그녀는 12년 전,
여섯살 때, 불이 난 아파트 11층에서
언니가 이불에 싸서 밖으로 던졌으나,
지나가던 남성이 기적처럼 받아냄으로써 살았다.
하지만 그 후로 유원은
생명을 연장시켜준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고,
그들 몫까지 행복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산다.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주변의 기대에 맞추면서.
그러던 유원이 친구 수현을 만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
수현은, 유원과 달리 매사에 쿨하고 씩씩하다
유원과 수현이 만나는 장소는 '옥상' 이다.
옥상은, 유원이 화재아파트에서
자기 몸이 던져져야 했던 추락의 장소를 상징한다.
그런데 유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트라우마를 발생시켰던 곳을 피하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 옥상에서 유원은 수현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삶을 회복한다.
유원의 삶을 규정짓던
자신의 부모님, 자기를 구해 주었던 아저씨에게
그들은 몰랐을 구원받은 자의 굴레,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말해주며,
온전한 한 주체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장면이 흐뭇했다.
높은 곳에 서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의 보상은
희망찬 새 삶임임을 유원은 깨우치게 된다.
작가가 사용한 여러 상징 장치들이
난해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주제를 향하도록 잘 설계 되었다.
책 서평을 쓸라치면
쓸게 참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상처와 아픔이 있음을 알게해준
작가 백온유씨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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